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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정체의 시작**
새벽 6시 10분. 고속도로의 첫 빛이 아스팔트 위로 스며든다. 안개가 희뿌옇게 깔린 차창 너머로 희미한 헤드라이트가 줄지어 춤을 춘다. 그리고 그 가운데, 네 대의 차가 각자의 운명처럼 엉켜 있다.
“또 막히겠군.” 붉은 미니쿠퍼의 운전석에서 희수가 중얼거렸다. 손목시계를 본다. 출근길의 전조가 이미 손끝으로 전해진다. 시트에 깊숙이 몸을 묻으며, 희수는 무심코 앞 유리창의 물방울을 따라 시선을 옮긴다. “아빠, 오늘은 늦지 않을 거지?” 옆자리의 딸, 민지가 물었다. “글쎄, 민지야. 아빠가 운전을 잘하면… 아니, 오늘은 꼭 일찍 데려다줄게.” 그러나 희수의 미소에는 자신감이 담기지 않았다. 미니쿠퍼의 엔진은 조용히 웅웅거렸고, 앞에 길게 늘어선 차들의 테일라이트는 멀고도 가까워 보였다.
그 오른쪽 차선, 검은 벤츠 S클래스의 창문에 진한 선글라스가 반짝였다. “이래서 내가 아침 일찍 나오는 건데.” 벤츠의 주인인 정우는 불평하듯 혼잣말을 했다. 차 안에서는 은은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고, 가죽시트의 감촉은 여전히 고급스럽다. 하지만 그의 이마에는 땀이 맺힌다. “정우 씨, 오늘 미팅 8시죠?” 뒷좌석에서 비서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응. 하지만 이러다간 늦겠어.” 정우는 핸들을 세게 잡는다. 벤츠가 자존심이 상한 듯, 앞차의 엉덩이를 바싹 따라붙는다.
왼쪽 차선, 은색 벤틀리 컨티넨탈 GT가 우아하게 섰다. “마담, 커피 드릴까요?” 운전기사가 물었다. “아니, 됐어요. 밖을 좀 볼게요.” 벤틀리의 주인, 강미경은 창밖에 시선을 던진다. 유리창 너머로 펼쳐진, 정체된 차들의 물결. 그녀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오늘은 무슨 일이 일어날까?” 벤틀리는 품격 있게, 그러나 조금은 초조하게 엔진을 낮은 소리로 울렸다.
그리고, 맨 오른쪽 차선의 회색 스타리아. “야, 민철이 너 진짜 길 잘못 들었잖아!” “아, 형. 내비가 이 길이 빠르다 그랬다니까요!” 스타리아 안에는 네 명의 젊은이가 있다. 민철이 운전대를 잡고, 옆자리의 상우가 군것질거리를 꺼내든다. “그래도 우리 늦겠네. 오늘 현장 가야 하는데…” 뒷좌석의 지수와 영호도 투덜댄다. “야, 그래도 우리가 스타리아라서 다행이지. 승합차 아니었으면 이 짐 다 어디 실었겠냐?” 민철이 힘없이 웃었다. 그러나 차창 밖에는, 끝없는 브레이크등의 행렬. 고속도로는 이미 사람들의 시간을 잡아먹고 있었다.
***
희수는 라디오 볼륨을 높였다. “…오늘 오전, XX고속도로 양방향 모두 극심한 정체가 예상됩니다. 현재 1차로부터 4차로까지 모두 정체…” 민지가 뾰로통하게 입을 삐죽인다. “아빠, 우리 오늘도 지각이야?” “아니, 괜찮아. 아빠가 어떻게든 해볼게.” 희수는 한숨을 삼키며, 미니쿠퍼의 작은 몸집을 이용해 옆 차선에 틈을 노린다.
벤츠 안, 정우는 서류가방을 옆에 두고 핸드폰을 집어든다. “교통상황 좀 확인해봐.” 비서는 빠르게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정체가 10km 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회로는 이미 통제됐다고 해요.” 정우는 이를 악물며, 벤츠의 엔진을 짧게 밟았다. 하지만 차는 한 뼘도 나아가지 않는다.
벤틀리의 뒷좌석에서 미경은 손톱을 조심스럽게 바라본다. “달리 방법이 없겠네요. 시간은 흐르고, 차는 멈추고… 이게 바로 인생인가?” 운전기사는 가볍게 웃었다. “그래도 마담, 오늘따라 차가 참 다양합니다. 저기 미니쿠퍼도 귀엽고, 스타리아에 젊은이들도 많고.” 미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런 정체 속에서도 각자의 사연이 있겠죠.”
스타리아 안, 상우가 큰소리로 외쳤다. “야, 우리 노래라도 틀자! 이럴 땐 신나는 게 최고지!” 지수가 핸드폰을 연결해, 볼륨을 높인다. “빵빵!” 영호가 장난스럽게 크락션을 눌렀다. “야! 괜히 눌렀다가 화만 내지 말고.” 민철은 웃으며, 다시 내비게이션을 확인한다. “근데, 이 길 진짜 맞나…?”
***
한참을 그렇게, 차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스팔트 위에 햇살이 번진다. 사람들은 각자의 차 안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미니쿠퍼의 희수는 민지에게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아빠가 어릴 때는 말이야, 이렇게 차가 많지 않았던 것 같아.” 민지는 투덜거리면서도, 아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벤츠의 정우는 다시 스마트폰을 켰다. “이렇게 가다간 오늘 미팅도 망치고, 하루가 엉망이겠군.” 비서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래도, 밖은 참 평화로워 보여요.” 정우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정체된 차들, 그리고 그 위를 유유히 날아가는 한 마리 까치. “평화로워… 그렇지. 하지만 이 안은 전쟁터야.”
벤틀리의 미경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럴 때일수록 여유를 가져야지.” 운전기사는 라디오를 켰다. “…도로는 여전히 막히고 있습니다. 시민 여러분, 안전운전 하세요.” 미경은 창밖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스타리아 안의 청춘들은, 갑자기 게임을 시작했다. “창밖에 빨간색 차 찾기!” “저기, 저기!” “아니, 저건 주황색이야!” 웃음소리와 언쟁이 스타리아의 좁은 공간을 가득 채운다. 지루하고 답답한 순간조차, 이들에게는 작은 즐거움이 된다.
***
그렇게 시간은 흐른다. 정체는 풀릴 기미가 없다. 고속도로 위, 수백 수천 대의 차들이 한 몸처럼 엉켜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미니쿠퍼, 벤츠, 벤틀리, 스타리아. 각기 다른 사연과 목적을 안고, 같은 길 위에서 멈춰 있다.
하지만 누구도 알지 못했다. 이 평범한 정체의 아침이, 곧 평범하지 않은 하루의 시작이 될 것이라는 걸. 고속도로 저 끝에서, 작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아직 아무도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
차량들 사이로, 갑자기 퍼지는 경적 소리.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소리친다. “저기 불난 거 아니야?” 순간, 희수는 사이드미러를 통해 멀리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본다. 벤츠의 정우도, 벤틀리의 미경도, 스타리아의 젊은이들도 모두 고개를 돌린다.
정체는 점차 혼란으로 변해간다. 누군가는 차에서 내려서 달리기 시작한다. 누군가는 핸드폰을 붙잡고 다급히 전화를 건다. 고속도로 위, 질서가 무너지고 있었다.
희수는 민지의 손을 잡는다. 정우는 비서에게 “당장 내려!”라고 소리친다. 미경은 운전기사에게 조용히 말했다. “침착하게, 하지만 빨리 움직여요.” 스타리아의 민철은, 동료들에게 외친다. “짐 챙기고, 바로 나가자!”
고속도로 위, 정체는 이제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로 변해간다.
***
이렇게, 막혀 있던 고속도로 위에서 미니쿠퍼, 벤츠, 벤틀리, 스타리아 네 대의 차와 그 안의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이 거대한 혼란을 뚫고 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정체의 끝에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 1장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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