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딩 중...
로딩 중...
## 1장. 겨울의 속삭임
회색빛 하늘 아래, 윈터펠의 웅장한 성벽은 마치 늙은 거인처럼 우뚝 솟아 있었다. 칼바람이 성벽을 할퀴고 지나가며 애처로운 울음소리를 내었고, 깃발은 얼어붙은 듯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깊어가는 겨울의 냉기는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윈터펠의 모든 틈새로 파고들어, 돌벽 안쪽의 온기를 탐하는 듯했다.
대영주 에다드 스타크는 굳은 표정으로 성벽 위를 거닐었다. 그의 어깨에는 짙은 회색 망토가 걸쳐져 있었고, 그 아래로는 북부의 혹독한 추위에도 견딜 수 있는 두꺼운 모피 옷이 보였다. 까마귀 몇 마리가 그의 머리 위를 맴돌며 불길한 울음소리를 냈다. 마치 다가올 불행을 예고하는 듯했다.
“장벽 너머의 소식은 어떻습니까?”
네드는 옆에 서 있던 성벽의 수비대장에게 물었다. 수비대장은 긴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여전히 불길한 소문만 들려옵니다, 영주님. 야인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고, 더 북쪽에서는… 말하기도 두려운 이야기들이 전해져 옵니다.”
네드는 미간을 찌푸렸다. 장벽 너머의 소식은 언제나 불안감을 안겨주었지만, 최근 들어 그 불안감은 더욱 커져만 갔다. 야인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것은 단순한 약탈이나 국경 분쟁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그 ‘말하기도 두려운 이야기들’이란, 잊혀진 옛날이야기에나 나올 법한 존재, 화이트 워커에 대한 것이었다.
“벤젠 스타크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나?”
네드가 다시 물었다. 벤젠은 그의 동생이자, 나이트 워치의 일원으로 장벽 너머 정찰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 그의 오랜 침묵은 네드의 마음속에 불안감을 더욱 키웠다.
“아직 소식이 없습니다, 영주님. 걱정됩니다.”
수비대장의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걱정이 담겨 있었다. 네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벤젠은 용감하고 노련한 전사였지만, 장벽 너머의 위험은 예측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때, 성 아래쪽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네드는 성벽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아들 롭과 딸 산사, 아리아, 그리고 어린 브랜이 마당에서 놀고 있었다. 그들의 웃음소리가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울려 퍼졌다. 그 모습을 보자, 네드의 얼굴에 잠시 미소가 스쳤다. 아이들은 아직 세상의 냉혹함을 알지 못했다. 그는 아이들이 최대한 오랫동안 그 순수함을 간직할 수 있기를 바랐다.
“영주님!”
갑자기 한 병사가 숨을 헐떡이며 달려왔다. 그의 얼굴은 공포로 하얗게 질려 있었다.
“무슨 일인가?”
네드가 날카롭게 물었다.
“다이어울프가… 다이어울프가 발견되었습니다!”
병사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다이어울프는 북부의 상징이자, 스타크 가문의 문장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수백 년 동안 윈터펠 근처에서 자취를 감춘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어디서 발견되었다는 것이냐?”
네드는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꼈다. 다이어울프의 출현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잊혀진 옛 예언이 되살아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숲 속에서… 죽은 암컷 다이어울프와 함께… 새끼들이… 새끼들이 있습니다!”
병사의 말에 네드는 망설임 없이 성벽 아래로 내려갔다. 그의 마음속에는 예감과 불안감이 뒤섞여 휘몰아치고 있었다. 다이어울프의 출현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리고 장벽 너머의 어둠은 과연 무엇을 숨기고 있는 것일까? 윈터펠에 겨울의 차가운 속삭임이 스며들고 있었다.
네드는 숲 속에서 죽은 어미 다이어울프 옆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새끼들을 발견했다. 새끼들은 모두 여섯 마리였고, 각각 짙은 회색, 순백색, 그리고 검은색 털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스타크 가문의 아이들처럼.
롭은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아버지, 정말 다이어울프예요! 우리가 키울 수 있나요?”
네드는 잠시 망설였다. 다이어울프는 위험한 짐승이었고, 아이들에게 위협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간절한 눈빛을 보자,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그래, 키우도록 하자. 하지만 조심해야 한다. 다이어울프는 충성스러운 동물이지만, 야생의 본능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새끼 다이어울프들에게 다가갔다. 각각 마음에 드는 새끼를 골라 품에 안았다. 그 순간, 네드는 새끼들 사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홀로 있는 또 다른 새끼를 발견했다. 그 새끼는 다른 새끼들보다 작고, 온몸이 새하얀 털로 뒤덮여 있었다. 마치 눈처럼.
“저건…?”
네드가 묻자, 롭이 대답했다.
“저건 알비노예요, 아버지. 다른 새끼들과 다르게 눈도 빨개요.”
알비노 다이어울프는 매우 드문 존재였다. 마치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듯한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겼다. 네드는 그 새끼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안아 올렸다. 새끼는 작고 약했지만, 네드의 손길에 순순히 몸을 맡겼다.
“이 새끼는… 존이 키우도록 하자.”
네드는 자신의 사생아, 존 스노우를 떠올렸다. 존은 항상 윈터펠에서 소외된 존재였다. 마치 알비노 다이어울프처럼. 네드는 존에게 이 새끼가 친구가 되어주기를 바랐다.
그날, 윈터펠에는 여섯 마리의 다이어울프와 함께 새로운 운명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아무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지만, 모두가 느낄 수 있었다. 뭔가 거대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겨울의 속삭임은 점점 더 커져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속삭임은 곧 웨스테로스 전역을 뒤흔들 폭풍의 전주곡이었다.
며칠 후, 왕의 수관 로버트 바라테온이 대규모 수행원을 이끌고 윈터펠에 도착했다. 로버트는 네드의 오랜 친구이자, 함께 반란을 일으켜 타르가르옌 왕조를 무너뜨린 전우였다. 그의 방문은 네드에게 큰 기쁨을 안겨주었지만, 동시에 불안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로버트는 단순한 친선 방문이 아닌, 중요한 제안을 하기 위해 윈터펠을 찾은 것이었다.
“네드!”
로버트는 네드를 뜨겁게 포옹하며 외쳤다.
“오랜만이구나, 친구! 윈터펠은 여전히 춥군!”
로버트는 호탕하게 웃었다. 그의 웃음소리는 윈터펠의 차가운 공기를 녹일 만큼 활기찼다. 하지만 네드는 그의 웃음 뒤에 숨겨진 고뇌를 느낄 수 있었다.
연회장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로버트는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전임 수관 존 아린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한 의혹, 그리고 왕국을 위협하는 보이지 않는 그림자에 대한 불안감. 그는 네드에게 왕의 수관 자리를 제안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네드, 자네만이 나를 도울 수 있다. 함께 왕국을 지키자.”
로버트의 간절한 눈빛에 네드는 고민에 빠졌다. 그는 권력 다툼에 휘말리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친구의 간청을 거절할 수도 없었다. 윈터펠의 평화로운 삶을 뒤로하고, 그는 왕국을 향해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것은 운명의 갈림길이었다. 네드는 아직 알지 못했다. 그 결정이 자신과 가족, 그리고 웨스테로스 전체의 운명을 뒤바꿀 거대한 소용돌이의 시작이라는 것을. 겨울의 속삭임은 이제 거대한 폭풍으로 변해, 웨스테로스 대륙 전체를 집어삼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네드는 윈터펠을 떠나기 전, 가족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캐틀린은 남편의 결정을 걱정했지만, 그의 의지를 존중했다. 롭과 산사, 아리아는 아버지와 헤어지는 것이 슬펐지만, 곧 다시 만날 날을 기다렸다. 브랜은 아버지의 품에 안겨 울음을 터뜨렸고, 존은 말없이 네드의 손을 잡았다. 그의 눈빛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출발 당일, 윈터펠의 성문 앞에는 스타크 가문의 기수들이 도열해 있었다. 네드는 말에 올라타며 가족들을 돌아보았다. 캐틀린은 눈물을 글썽이며 손을 흔들었고, 아이들은 아버지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네드는 윈터펠을 떠나 왕도 킹스랜딩으로 향했다. 그 여정은 길고 험난했다. 하지만 네드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친구와 왕국을 위해,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네드는 알지 못했다. 킹스랜딩에는 그가 상상할 수도 없는 음모와 배신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의 명예와 정의는 곧 시험대에 오를 것이라는 것을. 겨울의 속삭임은 이제 킹스랜딩의 성벽 안쪽까지 파고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속삭임은 곧 피비린내 나는 비극의 서막을 알릴 것이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
다음 에피소드에 반영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