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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역류의 예감
도시는 거꾸로 흐르는 강을 하나 품고 있었다. 새벽마다 강물은 너울너울 위로 흘렀고, 강 위의 다리는 쓸쓸히 안쪽으로 휘었다. 사람들은 강을 보고 길흉을 점쳤다. 물이 가볍게 오르면 하루가 가벼울 것이고, 물이 무겁게 내려앉으면 미련이 무거워져 발목을 붙잡을 거라는 말이 돌았다. 그 가운데, 종종 시계탑이 울릴 때면 누군가는 섬광처럼 드물고도 무심한 결심을 하곤 했다.
B는 시간에 닿는 손을 가진 사람이었다. 누구나 아는 건 아니었고, B 자신도 그 사실을 부정하려는 듯 조용히 살았다. 시계공방의 뒷골목, 유리창 너머 무수한 톱니바퀴와 나사들 사이에 숨어, B는 언제나 손에 박혔던 미세한 금속 먼지를 털었다. 그 손길은 부드럽고 정확했지만, 그 눈은 늘 저 먼 곳을 보고 있었다. 종이 울리기 전의 공백, 숨이 쉬어지지 않는 순간들. B는 그런 공백에 익숙해 보였다.
A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적어도 자신은 그렇게 믿었다. 아침이면 빵집에 들러 고소한 버터 크루아상을 두 개 사서 골목을 걷고, 낮에는 도시 중심지에 있는 기록관리소에서 구닥다리 서류를 정리하거나, 시장에서 의뢰받은 자질구레한 심부름을 하고, 저녁이면 강변의 벤치에 앉아 저쪽다리 위로 넘어가는 붉은 빛을 구경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A가 너무 밝다고, 너무 질문이 많다고, 너무 쉽게 웃는다고 수군거렸다. 그런 것들도 하나의 색깔이라면, A는 그 색깔로 도시를 칠해보고 싶었다.
처음 A가 B를 보았던 날은, 십이월 첫 번째 주였다. 공기가 종잇장처럼 얇아져 손톱으로 긁으면 고운 소리가 날 것 같던 맑은 아침이었다. 시장 구석의 오래된 시계공방 앞에 서서 A는 번들거리는 반달 모빌을 구경하고 있었다. 바람이 불자 반달과 은색 별들이 살짝 흔들렸다. 그때 안에서 누군가가 문을 열고 나왔다. 검은 모직 코트를 품에 끌어안듯 여민 채, 알 수 없는 물결의 냄새와도 같은 향기가 스쳐 지나갔다.
B는 고개를 숙여 잠깐 발아래를 살피고, 곧장 길을 걸기 시작했다. 발걸음은 빠르지 않았고 무심했다. 그 무심함이 오히려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았다. A도 그중 하나였다. 눈이 맞았던 건 아니다. 말을 건 것도 아니었다. 그저, 대낮임에도 반쯤 축축한 눈동자, 뭔가가 흘러내리는 자국 같은 눈매를 보고 A는 이유 없이 생각했다. 저 사람은 자꾸 뒤를 돌아볼 것 같다. 그러나 돌아보면 무엇도 없어서 더 멍해질 것 같다.
A가 따라나선 건 계획도 충동도 아니었다. 손에 쥔 종이봉투가 조금 구겨졌고, 크루아상의 기름이 종이에 둥근 그림을 만들었다. A는 자신의 그림자가 B의 그림자보다 푸른지 노란지 잠깐 비교해보았고, 차라리 비교가 재미있으니 조금만 더 가보자고 했다. 거리의 끝에서 비둘기 두 마리가 날아올랐다. 바닥은 얼어 있었고, 해는 낮았으며, 종은 아직 울릴 기미가 없었다.
“저기요.”
생각보다 가까이 다가갔다. A의 목소리는 두 번 정도 부서져 나오고 나서야 원래대로 합쳐졌다. B는 멈춰서서 돌아보았다. 눈빛은 말 그대로 “누구?”였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혹시, 시계공방에서 나오셨죠? 저... 그 유리 돔 안에 있던 모래시계, 어디에서 파는지...”
A는 말끝을 흐렸다. 그런 건 사소한 변명에 불과했다. B는 A를 한 번, 모래시계를 대신 보는 듯 보다가, 짧게 대답했다.
“그건 판매용이 아닙니다.”
목소리는 얕고 고요했다. 어느 일정한 구간을 지나갈 때마다 약간 낮아졌다가 다시 평평해지는, 파도 같았다. B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A는 껄끄러움을 느꼈지만 손이 먼저 움직였다.
“그럼... 저, 다른 건요? 별 모양 같은 것도...”
“판매용인지 아닌지는 주인이 알죠.”
B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 건조하게 대꾸했다. 무심함이 예의 없음과는 다르다는 것을 A는 그때 처음 제대로 느꼈다. 예의는 규칙이고 무심함은 습관에 가까웠다. A는 그런 습관에 끼어드는 일에 서투르지 않았다.
“제가 빵을 샀는데요, 너무 많이 샀어요. 한 개 드실래요?”
A는 종이봉투를 들어보였다. 크루아상 하나가 입을 벌려 금빛 안쪽을 살짝 드러냈다. B는 잠깐 시선을 내렸다가 아니다, 알 수 없는 얼굴로 A를 봤다. 그냥 사람을 보는 얼굴이 아니라, 무언가를 정확히 측정하는 얼굴이었다.
“사양할게요.”
“그럼... 제가 계속 따라가도 되나요?”
“안 돼요.”
이번엔 아주 분명했다. A는 어깨를 으쓱했다. 웃음이 나와버렸다. 자꾸 웃는 건 귀찮음을 불러오는 습관이란 걸 A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좋았다.
“그럼 같이 걸어요. 어차피 같은 길일 수도 있으니까.”
“젊은 사람들에겐 그런 도둑질 같은 말재주가 있죠.”
“도둑질은 나쁜 건데요.”
“네, 그러니 하지 마요.”
B의 걸음이 약간 빨라졌다. A가 반 발자국 뒤로 따라붙었다. 발이 미끄러질 것 같아 조심스러웠지만, 따라가는 일이 적어도 지금 이 순간에는 A의 하루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 되어버렸다.
도시 한복판의 시계탑은 정오에 한 번 울릴 터였다. 그 전에는 작은 종들이 구석구석에서 시간을 알렸다. 의류점의 작은 청동 종, 약재상에서 허리춤에 달고 다니는 은방울, 그리고 기도원에서 기도를 시작할 때 흔드는 길쭉한 종. 아주 미세한 차이로 다른 소리들이 공기에 층을 만들었다. A는 그런 층들을 헤집고 B를 좇았다. 좇는다는 말은 마치 사냥 같아 싫었지만, 이 단어 말고는 적당한 게 없었다.
“저는 A라고 합니다.”
두 블록쯤 뒤에서 A가 이름을 내밀었다. B는 기대하지도 않았던 공을 받는 표정으로 A를 보았다.
“그게 저랑 무슨 상관이죠.”
“그냥요. 인사랄까. 이름 없는 사람을 계속 따라가면 제 입장도 좀 이상하잖아요.”
그럴싸한 말이었다. B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을 버티는 일이 A에게 힘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A는 늘 외부의 어려움보다 내부의 고요를 더 힘들어했다. 누군가가 입을 닫을 때 생기는 흰 공간은 너무 넓었다. 그곳에 A는 이름, 질문, 말장난으로 한 줄 한 줄 실을 걸어 채워넣어야 낙심하지 않았다.
“오늘 강이 좀 거꾸로 거세게 올라오는 거 보셨어요? 저녁쯤 비가 올지도 몰라요. 강이 그렇게 올라오면 대개 그래요.”
“그걸 보고 어떻게 비를 알죠.”
“할머니가 늘 그러셨어요. 사실... 잘 맞지는 않지만, 재밌잖아요. 하나쯤 믿는 것도.”
“믿는 건 취향이 아니죠.”
B의 말끝이 이상하게 부드러워졌다. 그 지점에서 A는 처음으로 B의 뒷모습이 무너질 수 있는 벽으로 보였다. 그 벽에는 금이 가 있었지만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누르면 따뜻했다.
그날 오후, A는 B를 멀리서 보고만 있었다. 기록관리소의 창문 너머로, 골목 구석에 앉아 낡은 책을 넘기는 B의 옆얼굴이 보였다. 누가 보면 스토커 같다고 할지도 몰랐다. A는 자주 그런 생각을 했다. 자신의 행동을 객관화하고 도망칠 구실을 만들기. 그러나 이상하게도,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책갈피처럼 얇은 공기가 걸려 있어도 그 사이로 가야 했다.
“또 왔네요.”
목소리였다. 창틀에 팔꿈치를 괴고 있다가 황급히 고개를 든 A는 B를 마주쳤다. 분명히 거리에 있었는데 어느새 바로 밑까지 와 있었다. B의 움직임은 여전히 고요했다. 그 고요함 때문에 B의 접근은 자주 전조 없이 일어났다.
“여기 일하세요? 기록관리소?”
“가끔요.”
“책 좋아하시나 봐요.”
“질문은 그만하죠.”
“그럼... 말씀해주세요. 이름.”
조용한 구호처럼 A가 던졌다. B는 잠시 침묵했다. 바람이 종이를 넘겼다. 그 소리가 아주 오랜 뒤에 도착하는 듯했다.
“B.”
“비... 빗소리 같네요.”
A는 바로 말했다. B의 눈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 비라는 소리는 많은 것과 연결되어 있었다. 닿고 싶지 않았다. B는 다시 평평한 눈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무튼, 반가워요. B.”
“반갑지 않아요.”
“그래도요.”
그날 저녁, A는 강변에 앉아 있었다. 바람이 불었다. 물은 오늘따라 더 곤두서 있었다. A는 무릎을 감싸쥐고 떠오르는 파문들에 이름을 붙여 보았다. 연못에 돌을 던지는 아이의 장난 같은, 그러나 돌 대신 어둡고 단단한 것이 앉아 있는 듯한 파문들. A는 손을 뻗어 물 위를 쓰다듬듯 허공을 그었다. 한 계절을 어루만지는 손처럼. B를 뒤쫓는 일이 유치할 만큼 어른스럽지도, 어른스러울 만큼 유치하지도 않았다. 다만 A의 하루는 그 일로 길어졌다. 밤 또한 길어졌다.
다음 날, 시장에 비가 들었다. 예보처럼 내리는 비가 아니라, 누군가 모래를 질척하게 만들어놓고 살며시 뒤집은 것처럼, 조금씩 틈에서 스며 나오는 비였다. 상인들은 모루 위의 쇠를 덮었고, 가벼운 천들의 색은 늘었다. B는 그 사이를 무표정하게 걸었다. A는 비가 싫지 않았다. 비는 단조롭고, 단조로운 건 대개 용이했다.
“B!”
A가 손을 흔들었다. B는 고개를 약간 돌려 소리의 출처를 확인했을 뿐, 반응하지 않았다. A는 빨리 걸었다. 발바닥에 물이 들어차고, 양말이 찢어진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발걸음은 가벼웠다. 가까워졌을 때, B는 잠깐 멈추었다.
“젖어요.”
A가 말했다. B는 A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정말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미소를 비스듬히 지었다. 그 미소는 살짝 걱정스러웠다. 마치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규칙을 애써 지키려는 사람의 미소처럼.
“당신이요.”
A는 하하하고 웃고 말았다. B는 아주 잠깐 눈을 감았다. 그때, 앞쪽에서 소리가 났다. 우마차 하나가 제동을 제대로 걸지 못한 채 미끄러졌다. 바퀴가 물 위를 타고, 짐이 무너졌다. 짐 속에는 오래된 기계 부품들이 들어 있었다. 톱니바퀴들이 쏟아져 나와 바닥을 굴렀다. 사람들의 비명, 누군가가 “제발!” 하고 외치는 소리. A와 B도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무언가가 빠르게 굴러왔다. 반짝이는 무언가, 사람 머리만 한 크기의 거대한 시계 몸통이었다. 그것은 비에 젖어 빛이 났고, 무거워 보였다. B는 반사적으로 한 발 물러났다. A는 반사적으로 한 발 나섰다.
멈춘 것은 두 가지였다. 시계 몸통이 A와 B 사이 몇 발짝 앞에서 미끄럼을 멈춘 것, 그리고 사람들의 호흡이었다. B의 호흡만은 이상하게 흐트러지지 않았다. 시간의 표면이 얇게 흔들렸다. 비가 떨어지는 각도가 잠깐 기울었다. A는 그런 것을 알 리 없었다. 그저 본능이 먼저 움직였다. A가 손을 뻗어 B의 소매를 끌었다.
“조심!”
거대한 금속 질량이 바닥에 닿아 쿵 하고 울렸다. 여음이 오래 갔다. B는 안전했다. 대신 A의 팔뚝에 시계 몸통의 모서리가 스쳤다. 얇은 살이 찍혔고 피가 났다. 뜨거운 느낌이 느리게 도착했다. A는 “앗” 하고 아주 작은 소리를 냈다.
“괜찮아요?”
B가 물었다. 눈빛이 아까와 달랐다. 둔감한 무관심과는 다른, 예전의 것처럼 보였다. B는 A의 팔을 봤다. 손을 댈까 말까, 입술을 한 번 다물었다.
“아, 소리만 컸지 별일 아니네요. 이런 거 자주 나요.”
A는 웃었다. 몸의 모든 것이 웃음을 포함하도록 고집했다. B는 잠깐 눈을 찌푸렸다. 그리고 아주 작은, 거의 보이지 않는 한숨을 쉬었다. 그 한숨은 기억처럼 들렸다.
“다신 내 소매를 잡지 마요.”
말에 가시가 있었다. 어리둥절한 순간이 지나가자 A는 기분이 이상해졌다. 고맙다는 말 대신 듣게 되는 그런 말. 그래도 A는, 여전히 그 한숨의 온도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하루 동안은 충분할 것 같았다.
시장에서 잠잠해진 소동의 잔여는 오래 남았다. 빗물이 돌 사이로 스며들고, 톱니바퀴 하나가 물 위에 떠다니다가 구석으로 쓸려갔다. A는 자신의 팔에서 피가 스며들던 자리를 손수건으로 눌렀다. 손수건은 할머니가 수놓아 준 것으로, 모서리마다 흰 실로 아주 작은 별들이 놓여 있었다. B는 그런 A를 한 번 보고, 말없이 떠났다. 발자국은 곧 물에 지워졌다.
그날 밤, B는 다리 위에 서 있었다. 강은 어둡게, 그러나 분명히 위로 흘렀다. 반대로 흘러가는 물결 위로 달이 패배자처럼 비쳐서, 스스로 빛나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B는 포켓에서 작은 모래시계를 꺼냈다. 아주 오래된 물건이었다. 유리관 속에 담긴 모래는 눈처럼 가볍지 않고, 파편처럼 무거웠다. B는 그 시계를 뒤집었다. 모래가 떨어졌다. 아주 천천히. 거의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해도 좋을 만큼.
“안 돼요.” B가 스스로에게 말했다. 물소리가 대답했다. 모래 소리가 물소리 위에 고개를 내밀었다가 이내 사라졌다.
“하지 않기로 했죠.”
누구도 듣지 않는 소리를 중얼거렸다. 목소리는 종소리처럼 사소하고도 자명했다. A의 얼굴이 떠올랐다. 소매를 잡던 손, 아무렇지 않게 피를 묻히던 웃음. 도움이 되려고 나섰다가 상처를 입고도 하하 웃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B는 그런 사람들에게서 늘 도망쳐야 했다. 도망치지 않으면, 다 무너졌으니까. 시간을 되감아 무너지는 순간을 견뎌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되감은다고 해서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흉터는 어김없이 남았고, 흉터 속에는 이름들이 들어 있었다.
A의 이름은 아직 흉터 속에 있지 않았다. 그래서 B는 그 이름을 모르는 척하려 했다. "A." B가 입술을 다물고 이름을 삼켰다. 어쩌면 다음번에는 모를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그 정도 점잖은 거짓말로 미래가 바뀌는 일은 없었다. 모래는 고집스러웠고, 시간은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흘렀다. 되감기조차도 결국은 흐름의 일부일 뿐이었다. 어디서든 돌아오는 것들처럼.
며칠 동안 A는 B를 보지 못했다.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아니면 아픈 사람을 만나러 갔을지도 몰랐다. A는 그런 상상들을 사용해 시간을 지났다. 그러면서도 A는 시장에서, 골목에서, 다리에서, 자주 멈춰서 뒤를 돌아봤다. B가 있을지도 모르는 곳을 돌아보고, 없음을 확인하면서도 이상하게 안심했다. 없다는 것은 아직 가능하다는 뜻이 되기도 했다. 어떤 사람들은 미래를 점칠 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으면 그것을 오히려 좋은 징조로 받아들였다. 특정한 상이라도 떠오르면 반드시 그 상이 그대로 이뤄진다고 믿는 것처럼이나, 개발이 덜 된 믿음이었다.
“B를 찾죠?”
기록관리소 앞에서, A에게 말을 건 사람은 작고 둥근 여자였다. 붉은 머리끈을 하고 있었다. A는 어딘지 당황스러웠다.
“제가요?”
“다 보이죠. 며칠째.” 여자는 늘어지지 않는 혀로 정확하고 빠르게 말했다. “일 많이 하세요. 도망다니는 사람이랑 붙어다니면 일이 늘죠.”
“그 사람이 왜 도망다닌다는 거예요?”
“몰라서 묻나요.” 여자는 어깨를 으쓱했다. “이 도시에서 눈을 자주 깜박이는 사람들은 다 도망자예요. 무엇에서든.”
여자는 그것만 말하고 갔다. A는 잠깐 쓴웃음을 지었다. B가 눈을 자주 깜박이던가? 그런 것까지 보았나? A는 눈을 감았다 떠 보았다. 한 걸음, 한 걸음. 감았다 뜬 사이에, 아주 미세하게 어떤 소리가 끼어드는 것 같았다. 모래가 떨어지는 소리일까. 아니면 비슷한 무언가. 그날도 조금 비가 내렸다.
또 하루가 지나고, A는 결국 B를 마주쳤다. 한낮, 시계탑의 그림자가 가장 얇을 때였다. 그늘이 얇으면 사람들 사이의 거짓말도 얇아진다고 했다. 두 사람의 그림자는 각자의 원인에 비해 과장되거나 축소되지 않았다. 그만큼 말하기에 좋은 시간이었다.
“또.”
B가 말했다. A는 괜히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네, 또. 도시가 좁아서요.”
“도시는 충분히 넓어요.”
“사람 마음은 안 넓잖아요. 그러니까 자꾸 좁아져요. 제가 아는 어떤 사람의 마음도...”
“그만.”
B가 부드럽게 잘랐다. 부드러운 칼날을 상상할 수 있다면, 그렇듯이 부드럽게. A는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해요. 당신에게 묻고 싶지도 않고, 말하고 싶지도 않은 것들이 있을 거예요. 근데 나는 자꾸 당신 생각이 나서...”
“사람들은 원래 그래요. 누군가를 떠올릴 때, 그 사람이 아닌 자신의 빈자리나 떠올려요.”
“당신은 나한테 뭐가 보이는데요.”
“짐작할 수 없어서 곤란해요.”
B가 똑바로 말했다. A는 그 대답이 아팠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아픔은 좋았다. 무엇인가를 정확히 받았다는 느낌은 고통이라도 위로처럼 느껴지곤 했다.
“그래도요, B. 나을 수도 있어요. 곤란함도 나아요. 소독하면.”
“시간은 소독되지 않아요.”
대답은 너무 빠르게 나왔다. 마치 오래, 오래 반복해온 말처럼. A는 그 말의 무게를 느꼈다. 그리고 어려운 생각을 내려놓았다. 대신 웃음. A가 늘 선택해온 방식. A는 주머니에서 작은 봉투를 꺼냈다.
“이거요. 어제 만든 과자예요. 설탕이랑 계란 흰자로 만든... 이름이 뭐였지? 라페? 라페는 커피고, 머랭. 머랭이에요.”
B는 봉투를 보았다. 손에 들까 말까 망설였다. A가 먼저 한 걸음 나와 봉투를 내밀었다. B의 손이 나타나 그것을 받아 들었다. 의외였다. A의 눈이 잠깐 커졌다.
“지금은 먹지 마요. 나중에요.”
“왜요?”
“지금은... 지금은 아무것도 괜찮아 보이니까요.”
그 말이 훗날 어떤 예감이었는지 A는 몰랐다. B는 봉투를 조심스럽게 코트 안쪽 주머니에 넣었다. 움직임이 신중했다. 누군가를 거절하는 모양새는 도란도란 말을 뱉는 것보다 훨씬 정성스러웠다.
그날 오후, A는 기록관리소에서 도면을 정리하고 있었다. 손가락이 오래된 종이 위를 지나갔다. 커다란 기차의 설계도, 과거의 에어서커, 실패한 기체의 기록들. 많은 기계들이 시간을 상대하려 했고, 대부분은 실패했다.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시간을 견디고, 다가올 시간을 속이고, 현재를 기만하는 법. 세 가지 모두에 익숙한 사람들은 흔치 않았다.
창밖에서 갑자기 누군가 소리쳤다. A는 얼굴을 들었다. 길 건너, 아이 하나가 길 가운데 서 있었다. 왜 멈춰 섰는지 알 수 없었다. 아이의 엄마가 어디선가 뛰어나오며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그 순간, 구석에서 한 남자가 마차의 고삐를 잡고 악을 썼다. 말이 놀라 앞발을 들었다. 누군가가 아이를 덮치기 직전, 시간이... 잠깐, 아주 잠깐 커튼을 스치듯 흔들렸다.
그 흔들림은 A에게는 느껴지지 않았다. A는 다만 배를 갈기듯 뛰어나갔다. 아이를 안아 든 여자가 넘어질 듯 비틀거렸다. A는 가까운 벽에 몸을 부딪쳤다. 팔이 아프고, 손목이 돌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아이는 무사했다. 엄마가 울었다. 사람들은 안도의 숨을 쉬었다. B는... 어디선가 그 모든 것을 보고 있었다. 아마도.
저녁에, B가 A를 찾아왔다. 기록관리소의 좁은 뒷문으로. 비가 그쳐 공기가 맑았다. 냄새가 더 정확해지는 시간. B는 아무 말 없이 A의 손목을 잡았다. A는 아프지 않은 척하려 했지만, B의 손끝이 닿자 숨이 멎었다. 뜨거운 것도 차가운 것도 아닌, 너무 살아 있는 온도. B는 조심스럽게 손목을 돌려 보았다.
“괜찮아요.”
안 괜찮아 보인다는 걸, 둘 다 알고 있었다. B는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왜 그렇게 했죠.”
“그럼요? 다른 누가 있나요.”
“당신.”
“나도요.”
B는 잠시 A를 보다가 웃음 비슷한 것을 지었다. 광대뼈가 조금 올라갔고, 눈이 도려내듯 얇아졌다. 웃음은 아니었다. 결정 같은, 비가 그친 후의 결처럼 보여서 A는 황망했다. 모래시계 속 모래가 다 떨어져 가는 모습을 보는 것처럼.
“그런 건... 하지 마요. 하게 될 때도 있겠고, 아마도 계속 하게 되겠지만... 가능하면 하지 마요.”
“당신 말대로라면 가능하지 않아요.”
A는 솔직했다. B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둘 사이의 공기는 얇았고, 날카로웠다. 조금만 그대로 있으면 찢어질 것 같았다. B는 A의 손목에서 손을 뗐다.
“내일은 오지 마요.”
“어디에요.”
“어디든.”
B는 돌아섰다. A는 아무것도 붙잡지 않았다. 약속처럼, 혹은 예고처럼,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B의 뒷모습은 미세하게 떨렸다. A는 그것을 바람 탓으로 돌렸다.
밤은 또 강 위로 내려왔다. 다음날, 그 다음날. A는 모르게 흘러가는 시간의 표정을 읽으려 했다. 아침의 빛이 쉽게 깨어나는 날은 좋았다. 그러나 몇몇 날들은 아침에도 어둑어둑했다. 그런 날에는 B가 더 자주 떠오르고, 더 자주 사라졌다. A는 씨앗에서 자라는 작은 줄기들을 떠올렸다. 줄기는 어딘가를 향해 컸고, 그곳은 대개 빛이 있는 곳이었다. 그게 A가 B에게 했던 행동과 어떻게 다른가. 많이.
언젠가 시장의 두꺼비점쟁이가 A에게 말했다. “당신은 눈을 너무 들여다봐요. 그러면 빠져요.” A는 그냥 웃었다. 아니, 웃는 수밖에 없었다. 빠지지 않으려 잠그는 사람은 대개 늦게 잠기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그냥 걸어 들어가는 사람이 더 천천히, 더 오래 물 위에 떠 있었다.
어느 날, 시계공방의 주인이 숨을 거두었다. 도시는 간소한 장례를 치렀다. 유리 돔 안의 물건들은 천으로 덮였다. 하얀 천의 표면을 가만히 보면, 약간씩 내려앉는 흔들림이 있었는데, 마치 안에서 밥짓는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A는 문 밖에서 서성였다. 사람들은 소곤거렸다. “그 사람, 시간을 만졌다지?” “그거 믿어?” “이 도시에서 그 정도는 다들 만지죠.” A는 그 말들을 들으면서, B를 떠올렸다. 주인이 살아있을 때 유리 돔 안에 있던 모래시계. B가 판매용이 아니라고 했던 그것. 혹시 B의 손이 닿았던 건 아닐까. 손끝으로 순간을 뒤집어 보았던 건 아닐까. B의 등에 늘 붙어 다니던 것이 시간의 풀줄기였다면, 그건 어떤 모양이었을까. 목을 조이는지, 허리를 감싸는지, 손목을 매다는지.
A는 그날 밤에 꿈을 꾸었다. 강이 거꾸로 흘러목까지 차오르는 꿈. 다리 위, 모든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만 달려가는 꿈. 뒤에서 종이 세 번 울렸다. 종소리는 아주 느렸고, 아주 멀리서 들렸다. A는 꿈에서 돌아선다. 그때 반대 방향에서 누군가가 뛰어왔다. B였다. B의 옆얼굴은 물빛이었다. A는 꿈에서도 놀랍게도 웃었다. 그러자 종이 네 번째 울렸다. 그건 정오에도 자정에도 울리지 않는 종이었다. A는 그 소리를 필사적으로 기억하려 했다. 깨어나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다음날, A는 조금 더 단단한 결심으로 B를 찾아갔다. 찾는 일은 난데없이 쉬웠다. 도시의 어느 골목, 늘 지나가던 다리 아래의 흔적, 기록관리소의 문고리에 묻어 있던 금속 냄새. A는 B의 그림자에 도착했다. “B.” A는 조용히 불렀다.
B는 놀라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돌리는 각도가 아주 작았다. 천천히. 마치 목을 구부리면 목이 부러질 것 같아서. B의 입술이 열렸다 닫혔다. A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말은 너무 많았고, 침묵은 너무 적었기 때문이다. 둘 사이에 있는 공기. A는 그 공기를 조금만 더 오래 붙들고 싶었다.
“당신은 자꾸 다치죠.”
B가 말했다. 대화의 시작으로서는 갑작스럽고도 정확했다.
“그만하면 괜찮은 편이죠.”
“아니요. 당신은 곧 부서집니다. 누군가를 끌어내려 대신 부서지는 종류예요.”
“나쁜가요.”
“나쁘죠. 세상 대부분이 당신을 이용하기 좋아해요. 그리고 나머지 일부는 당신을 사랑해서 당신을 부숴요.”
“당신은요.”
질문은 나왔다. A는 질문을 가끔 사랑했다. B는 잠깐 A의 눈을 보았다. 그 눈빛은 물기 없는 하늘 같았다. 건조한 날 벌어질 수 있는 모든 균열들을 품은 하늘.
“나는...” B는 말끝을 묻지 않았다. “나는 시간을 되돌릴 수 있어요.”
A의 심장이 잠깐, 너무 솔직하게 두 번 뛰었다. B는 미소를 짓지 않았다. 대신 손동작으로 그것을 증명해 보일 수 있을 것처럼 손을 들었다가, 내렸다. 주머니 속에서 무언가 굴러가는 소리. 어쩌면 A가 준 머랭. 어쩌면 작은 모래시계.
“그건... 농담이 아니겠죠.”
“농담이라고 생각하지 마요.”
“그러면, 어제... 아이가...”
“아니에요. 어제는 그냥 되었어요. 가끔은 그냥도 돼요. 하지만 대부분은 안 돼요.”
“그게...”
“무슨 뜻인지 묻지 마요.”
묻지 말라는 말은, 대개 묻고 싶은 마음을 불러왔다. A는 입술을 다물었다. 대신 눈을 크게 떴다. B는 그 눈을 보지 않으려 했지만, 보게 되었다. 거기에는 분명한 미련이 있었다. 어떤 것이든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의 미련, 혹은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지막까지 손을 흔드는 사람의 미련.
“나는... 누군가의 마지막을 되돌린 적이 있어요.”
B의 목소리는 그 말과 함께 깊어진 골짜기 같았다. 그 골짜기에 물이 찼고, 거울처럼 무엇인가를 비추었다. A가 거기에 비쳐 있었다. B는 빠르게 시선을 돌렸다.
“되돌리면, 그 사람이 살았어요. 그러나 다른 곳에서 누군가가 죽었어요. 어떤 경우에는, 같은 사람이 다른 방식으로 죽었어요. 시간이 그런 식으로 균형을 원해요. 그래서... 되돌리는 건 이기는 것 같지만, 지는 거예요.”
A는 조심스럽게 숨을 내쉬었다. 이런 종류의 비밀을 듣는 건, 늘 잘못된 시간에 온 손님이 되어 문턱에 걸터앉는 일과 비슷했다. 방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문밖으로 나가지도 못하는 자리.
“그럼, 나는...”
“당신은 나랑 있으면 위험해요.”
그 말은 너무 갑자기 튀어나왔다. A는 고개를 끄덕였고,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이해한다는 뜻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 이해와 수용은 늘 한 몸인 것처럼 보이지만, 때로는 전혀 달랐다.
“나는... 당신이 위험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게 더 위험해요.”
“그래도요. 그래도 나는 당신이 싫지 않아요.”
B의 눈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 이전의 그 작은 흔들림. 아마도 B는 그런 흔들림을 조심하고 있었을 것이다. 흔들림은 언제나 균열의 시작이었고, 균열은 무너짐의 시작이었다.
“나중에 후회할 거예요.”
“나중까지 가볼게요.”
잠깐, 아주 잠깐, 두 사람 사이의 공기가 더 맑아졌다. 말할 수 있는 말들이 많았지만, 말하지 않는 편이 더 많은 것을 지킬 때가 있었다. A는 손을 내밀려다가 멈추었다. 대신 허공을 쓸었다. B는 그런 A의 손을 보았다. 그 손이 나중에 어디에 닿게 될지, 무엇을 붙잡게 될지, 무엇을 놓치게 될지. B는 아마도 이미 알고 있었다. 알기 때문에 고개를 돌렸다. 알기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시계탑이 울렸다. 정오. 낮이 정확히 반으로 나뉘는 시간. 사람들은 밥을 먹고, 귀찮은 일들을 미루고, 짧은 사랑을 한다. A와 B는 종소리를 들었다. 철로 만든 종의 소리는 도시에 금속의 그림자를 드리웠다.
“머랭, 맛있었어요.”
B가 갑자기 말했다. A는 깜짝 놀랐다. 그러니까 먹었다는 거. 왜 나중에 먹으라고 했는지 등등의, 아주 쓸데없고도 사랑스러운 질문들이 머리 속에서 서둘러 손을 들었다. A는 하나도 꺼내지 않았다. 꺼내면 부서질 것 같았다.
“정말요? 좀 단편이죠?”
“단 건... 거짓말을 덮어요.”
“그럼 다음엔 덜 달게 만들게요.”
“그럴 수 있다면요.”
대화는 어느 지점에서 늘 그 자체로 끝났다. 그러나 끝나는 것은 시작보다 더 많은 의미를 품기도 한다. 두 사람은 각자 다른 방향으로 걸었다. 길은 멀지 않았다. 그러나 각각의 길 위에는 서로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햇빛은 명료했고, 바람은 장난을 치지 않았다.
그날 밤, A는 오래 걸었다. 강을 따라, 다리를 지나, 한참을. 도시의 외곽, 고철과 녹슨 기계 부품들이 가득 쌓여 있는 골목. 그곳에서 A는 길을 잘못 들었다. 아니, 아마도 잘못이 아닐지도 몰랐다. 어떤 잘못들은 결국 제대로의 길과 섞이기 마련이라서.
흑안개 집단이라 불리는 아이들이 있었다. 어둠 속에서 눈을 빛내는 놀이를 하고는 했다. A는 그 아이들 옆을 지나갔다. 아이들은 아무도 A를 해치려 하지 않았다. 다만 그 순간, 덜컹, 금속 문이 어딘가에서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났다. 누군가가 무거운 것을 끌고 있었다. A는 본능적으로 발을 멈추었다. 그리고 말이 필요 없다는 걸 이해했다. 어떤 순간들은 대화의 자격이 없다. 도시에서 조용히 일어나는 일들. 그런 일들 중 하나가, 어쩌면 지금이었다.
어두운 골목 모퉁이에서 빛이 번쩍였다. 누군가가 몸을 숙였고, 누군가가 달렸다. A는 숨을 죽였다. 비가 내리는 날의 철 냄새가 났다. 기억이 드문드문 고개를 내밀었다. B의 목소리, 섬광, 거꾸로 흐르는 강, 되돌릴 수 있는 것과 없는 것들. A의 발목을 잡는 어둠과, A가 손을 뻗어 닿으려는 빛. A는 여전히, 누군가를 위해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었다.
도시는 무심했다. 별이 몇 개 떠 있었다. 별빛은 차가웠고, 덜렁이는 목걸이처럼 흔들렸다. 아주 먼 곳에서는 아직 종이 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공기는 알았다. 어떤 종류의 울림이 곧 이곳을 지나갈 것이라는 것을. A는 알지 못했다. A는 그저 퍼뜩, B의 눈을 떠올렸다. 그 눈동자에 비쳐질 자신의 얼굴을 상상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B는, 그때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시간을 되감기 직전의 어지럼증. 세상이 한 번 서고, 다음 순간 뒤집히는 감각. 아직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직 아무 것도 망가지지 않았다. 그러나 곧. B는 모래시계를 집었다. 모래가 약간, 아주 약간 더 빨리 떨어졌다. 그 위에, A의 이름이 얹혔다. B의 손끝이 초조하게 떨렸다.
시간은 흔들렸다. 다리 위의 물은 아주 잠깐, 제자리에서 춤을 추었다. 그리고... 아직 아무도 모르는 방향으로, 아주 서서히 흘러가기 시작했다.
이 모든 시작들을, 자신들이 시작했다는 사실을 두 사람은 모르는 척했다. 모르는 척하면 덜 아프다는 것을 거듭해서 배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작들이란, 모르는 척한다고 해서 멈추지는 않는다는 것도 두 사람은 곧 알게 되리라. 언젠가 한 사람은 죽고, 다른 사람은 시간을 되돌릴 것이다. 그 후에 어떤 것들은 바뀌겠지만, 어떤 것들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B는 아마도, A를 살리기 위해 A와의 인연을 끊기라는 결심과, 그 결심이 너무 늦어질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동시에 안고 살게 될 것이다.
지금은 다만, 종이 아직 울리지 않았고, 사람들은 아직 잠들지 않았고, 강은 묵묵히 거꾸로 흘렀다. 그리고 A는, B의 조용한 불행을 아직 사랑하기 전이었다. A는 그냥 웃었다. 아무 이유 없는 작은 웃음. 그 웃음은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아주 먼 곳에서 어떤 모래가 한 알, 아주 정확하게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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