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딩 중...
로딩 중...

제1장. 0원의 다이어리와 +1의 시작
문을 열기 전, 나는 바닥부터 본다. 어제 밤늦게까지 회의하고 나서도 저 모서리에 남아있을 먼지가 신경 쓰인다.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대표님, 요즘은 청소 같은 건 직원들이 하죠? 나는 빗자루를 두 번 더 밀고 대답한다. 오늘은 내가 한다고. 이유를 설명하지는 않는다. 처음부터 남에게 맡길 수 있었던 건 없었으니까.
천장이 높다. 100평 매장에 어울리는 키 큰 식물들이 빛을 받는다. 조명 테스트를 마치고, 음악 볼륨을 두 칸 올린다. 매장 안쪽의 미용학교 강의실에서는 이미 조교가 분필 가루를 털고 있다. 오늘의 수업 주제는 동선 설계와 고객 응대. 나는 칠판 한쪽에 네 글자를 크게 쓴다.
+1
팀원들이 들어오고, 회의가 시작되면 나는 늘 같은 질문으로 말문을 연다. 우리 오늘, 무엇을 하나 더 쌓을 건가요? 누구는 예약 한 건, 누구는 피드백 한 줄, 누구는 시스템 한 칸. 그렇게 말이 튀어나오면, 나는 심장이 묘하게 움직인다. 그건 거창하지 않아서 좋다. 내가 살아서 증명해 온 방식이니까.
문득 유리 진열장에 비친 내 얼굴이, 오래전 내 그림자와 겹쳐진다. 속눈썹 글루 냄새, 형광등이 깜박이던 작은 방, 손등에 올려놓은 핫팩의 뜨거움, 그리고 다이어리 첫 페이지에 적힌 매출 0원. 귓가에 커다란 목소리가 떠오른다. 포기하면, 진짜 끝이야.
그 목소리를 처음 들은 날은 비가 내렸다. 얇은 신발이 다 젖도록 빗길을 걸었고, 나는 눈을 감고 숨을 길게 참았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 누군가가 나를 일으켜 세웠다. 무언가 이 이야기는 그날, 그 비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날도 아침은 일찍 왔다. 내가 수학 강사였던 시절, 늘 칠판 앞에서 숫자를 나열했다. 2차 함수의 그래프, 등차수열의 합, 미분 공식. 공식은 언제나 같은 답을 가리켰다. 내가 누군가를 가르치면, 그 학생은 점수를 올렸고, 부모님은 감사하다고 했다. 그런데 그날 칠판 앞에서, 나는 내 삶의 공식이 공백으로 남아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공식에 강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과, 내가 내일 어떻게 살지에 대한 답은, 어떤 공식에도 써 있지 않았다.
강의실의 학생 하나가 내게 묻는다. 쌤, 이건 왜 이런 거죠? 나는 분필을 들고 설명한다. 도함수의 부호를 보면 극값을 알 수 있어. 그러니까, 기울기가 음수에서 양수로 바뀌면 최소값, 양수에서 음수로 바뀌면 최대값. 설명하는 내 목소리가 자기 자신에게 부딪쳐 돌아온다. 그렇다면 내 인생의 기울기는 지금 무엇에서 무엇으로 바뀌고 있는 거지? 내가 계속 이렇게 설명하고, 다음 달도, 내년에도, 이 칠판 앞에 서 있을까? 내 안에서 누군가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니.
수업이 끝나고 나는 사직서를 썼다. 그리고 길게 울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두려움, 다른 하나는 해방감. 비가 내렸다. 우산을 쓰지 않고 걸었다. 물이 발목까지 올라왔고, 나는 그 젖음을 기억하고 싶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도록.
그날 밤 나는 인터넷에서 '속눈썹 연장'을 검색했다. 오래전, 친구의 결혼식 날 샵을 따라다니며 보았던, 집중과 손끝의 미세한 떨림과, 작업이 끝났을 때의 눈빛. 수학에서 느꼈던 것과는 다른 종류의 완성감이었다. 숫자가 아니라 사람의 눈을, 그 사람의 하루를 바꿔주는 일. 내가 사람을 마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드럼통에서 끌어올린 용기의 불꽃이 작게 탔다.
등록금을 카드로 긁었고, 나는 몇 주 동안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교육장을 오갔다. 처음 박스를 열었을 때 나는 손가락으로 글루의 병을 쓰다듬었다. 그 냄새는 나를 긴장시키고, 동시에 궁금하게 했다. 손을 씻고, 장갑을 끼고, 작은 집게를 잡았다. 눈꺼풀을 만지는 그 미세한 세계는 다른 어떤 것보다 조용하고 치열했다. 부정확함은 금방 티가 났다. 속눈썹 한 올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면, 눈은 곧바로 말해준다. 불편해요. 부드러워요. 위험해요.
첫날 나는 백 번을 떨었다. 교육장은 생각보다 긴박했다. 선생님은 말없이 내 손을 잡았다. 더 느리게. 숨 쉬고. 그리고 덧붙였다. 네가 누군가의 눈을 붙잡는 동안, 그 사람은 너를 믿고 있다. 모든 걸 내려놓고 누워 있는 사람 앞에서, 너는 흔들리면 안 된다. 나는 귓속에서 뛰는 심장을 억지로 눌렀다. 그녀의 눈은 감겨 있었고, 나는 내 손끝에서 생기는 나의 떨림이 그녀의 하루를 망치지 않기를 바랐다.
나는 내가 군인이 된 것 같았다. 싸우는 상대는 내 무능과 초조함이었다. 하나하나 억누르며, 하나하나 배웠다. 작고 조용한 승리였다. 누군가의 눈에 내 작업이 자리 잡을 때마다, 나도 조금씩 내 자리를 찾는다. 몇 주 뒤, 나는 자격증을 받았다. 얇은 플라스틱 카드 속 내 이름을 손끝으로 느꼈다. 이걸로, 나는 무엇을 시작할 수 있을까.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포기하면 진짜 끝이라는 것만은 알았다. 내 두려움의 끝과 용기의 시작 사이에 나는 한 걸음을 놓았다.
처음 내가 빌린 방은 골목 끝 3층, 간판도 없는 작은 공간이었다. 아침부터 동네 커피숍에 돌아다니며 플라이어를 돌렸다. 글씨는 직접 썼다. 신뢰할 수 있는 손글씨처럼 보이고 싶었다. 종이는 비에 젖어서 번졌다. 가게 주인이 쳐다보는 눈빛은 다양한 색이었다. 불쌍하다, 대단하다, 귀찮다, 궁금하다. 어느 것도 내 일이었다. 나는 인사했고, 웃었고, 다음 집으로 걸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첫날, 예약은 없었다. 시계는 기침하듯 바늘을 떨고 있었고, 의자 하나, 거울 하나, 침대 하나, 작은 가습기. 나는 손에 핫팩을 쥐고, 환풍기를 테스트하고, 광고 문구를 다시 다듬었다. 어둑해지자 배달음식을 시켜 먹고, 음악을 크게 틀었다. 청소를 했다. 사업자 등록증을 프레임에 넣어 벽에 걸고, 그 앞에서 작은 절을 했다. 무슨 절? 나 자신에게. 늘 혼자였던 내가, 그날만큼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다.
그날 밤 일지에 나는 씀씀이를 적었다. 월세, 공과금, 오늘 산 수건. 매출란에는 0원이 적혔다. 0이라는 숫자를 수학적으로 좋아한 적이 있었다. 중립, 시작, 공백. 그날의 0은 무릎을 꿇게 했다. 잠깐, 내가 이걸 정말 할 수 있나? 마음속 어디선가 또렷한 목소리가 나왔다. 지금 포기하면, 진짜 끝이야. 다이어리에 작은 하트를 그렸다. 오늘도 청소를 했다. ㅠ 스스로 칭찬했다. ㅠ
둘째 날도 예약은 없었다. 나는 루틴을 만들기로 했다. 아침 7시에 출근, 환풍, 섬유 탈취, 침대 정리, 수건 접기, 도구 소독. 8시에 첫 게시물 업로드, 9시에 주변 상권 탐사, 점심 직전에는 커피를 두 잔 사들고 같은 건물 원장님들에게 인사. 오후에는 교육 자료를 만들고, 저녁에는 시뮬레이션. 실습용 모형에 가짜 속눈썹을 수백 번 붙였다. 손가락이 굳고, 어깨가 아파서 핫팩을 두 장으로 늘렸다. 밤마다 내 다이어리에는 +1이라는 한 줄이 늘었다. 오늘 루틴 +1. 오늘 배우기 +1. 오늘 용기 +1.
셋째 날 오후, 내 첫 고객이 나타났다.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고, 작은 숨소리가 따라왔다. 스무 살 후반으로 보이는 그녀는 모자를 벗고, 수줍게 말했다. 혹시, 오늘 바로 가능할까요? 나는 속으로 숨을 멈췄다가, 웃었다. 물론이죠. 원하시던 스타일 있으세요? 그녀는 소파에 앉으며 눈을 비볔다. 사실, 제 결혼식이 다음 주라서요. 지난번에 다른 곳에서 했는데 자꾸 가렵고 떨어져서... 혹시 얇고 가벼운 스타일로 다시 해주실 수 있을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입으로 나온 말보다, 마음으로 먼저 답했다. 이 사람을 살려야 한다. 나는 그녀에게 따뜻한 차를 내고, 상담지를 꺼냈다. 알레르기 여부, 예민도, 평소 습관. 그녀는 조금 횡설수설했고, 나는 고개를 자주 끄덕였다. 자주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에겐 믿음이 생긴다. 침대에 누웠고, 나는 손을 씻고 장갑을 꼈다. 이 순간, 나는 내 삶의 가장 중요한 시험을 치른다. 손끝을 떨지 말자. 더 느리게. 숨 쉬고.
그녀의 눈꺼풀은 얇았고, 나는 더 부드럽게 접촉했다. 격자처럼 예쁘게 퍼져야 하는 선들이 내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나는 내 손이 수학 문제를 풀 듯 움직이기를 바랐다. 답은 하나가 아니었다. 사람마다 정답은 다르다. 나의 손끝은 그녀의 눈을 읽었다. 길지 않게, 촘촘하게, 미세한 각도. 정밀함이 악착 같다. 나는 그 시간을 사랑했다. 누군가의 삶이 내 손끝에서 변화할 수 있는 시간.
작업 중간중간, 나는 그녀에게 작은 얘기들을 건넸다. 언제부터 가려웠는지, 식습관, 빨리 씻는 타입인지, 천천히 씻는 타입인지. 그녀는 웃었다. 저 빨리요. 마음도 빨리고요. 나는 말했다. 오늘은 천천히 가볼게요. 나중에도 천천히 대하셔도 괜찮고요. 그녀는 숨을 내쉬었다. 2시간이 지났을 때, 나는 마지막 가닥을 올리고, 거울을 내밀었다. 그녀는 거울을 들고, 한참을 보다가 입술을 떼었다. 진짜... 예쁘다. 눈에 매달려 있던 무게가 사라지고, 대신 빛이 생긴 것 같았다. 이맛에 하는 거구나.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날 때, 나는 포스트잇을 한 장 건넸다. 예쁘니까 조심하세요. 그리고 오늘밤만은 눈물을 참아주세요.
그녀가 나가고 문이 닫히자, 나는 무릎이 풀렸다. 방 바닥에 앉아, 손을 하늘로 올렸다가 내렸다. 침대 옆, 편지함에는 아직 알림이 없다. 나는 다이어리에 적는다. 오늘 고객 +1. 오늘 감동 +1. 나는 손등을 쓸었다. 잠깐, 이걸 얼마나 버틸 수 있나. 그날 밤, 그녀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선생님, 너무 좋아요. 다음 주 친구들도 같이 예약해도 될까요? 나는 소리쳤다. 아무도 듣지 못했고, 나는 의자에 올라가 혼자 춤을 췄다. 음악은 크게 켜져 있었다. 기쁨은 때로 조용히, 때로 이토록 요란하게 찾아왔다.
하지만 모든 날이 검은 커피처럼 선명하진 않았다. 어떤 날은 글루가 쏟아지고, 어떤 날은 고객의 눈이 빨갛게 변해 갔다. 나는 그럴 때마다 가슴이 조여왔다. 나는 스트레스 서랍을 열고, 손가락을 태워버렸던 기억이 있다. 내 잘못이었다. 확인하지 않았던 작은 체크리스트 하나. 나는 그날 밤, 새 체크리스트를 만들었다. 소독 순서, 패치의 위치, 습도 점검, 환기 시간. 시스템 +1. 그리고 다음 날, 나는 작은 실패를 고객 한 명의 사과로 끝내지 않고, 내 사업의 습관으로 만들었다.
다섯 번째 주, 장사를 접을까 고민했다. 통장에 들어왔다 나가는 숫자들이 매번 창피했다. 납품 업체의 전화가 울릴 때마다, 나는 숨을 멈췄다. 건물주가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나는 웃었다. 괜찮아요, 열심히 해요. 그는 말했고, 나는 네라고 대답했다. 조금만 더요. 조금만 더. 매일 밤 나는 청소를 했다. 문고리 윤기가 어제와 다르게 반짝이면, 마음이 조금 나아졌다. 오늘도 청소를 했다. ㅠ 나는 다이어리에 또 적었다. 포기하지 않기 +1.
내가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한 건 그 즈음이었다. 나는 다시 칠판 앞에 서고 싶었지만, 이번에는 숫자가 아니라 내가 배운 것을 적고 싶었다. 두서없는 실패들의 공통점은 언제나 하나였다. 내가 사람을 잊을 때, 일이 무너졌다. 내가 사람을 보려고 하면, 일이 다시 자리잡았다. 그래서 나는 감동이라는 단어를 내 루틴에 넣었다.
감동이라고 쓰고, 사람의 마음을 쉬게 한다고 읽는다. 고객들이 앉는 소파에 작은 담요를 넣고, 물컵 대신 내 손 편지와 함께 나는 작은 사탕을 올렸다. 작업이 끝난 뒤 나는 48시간 관리법을 웃으며 읽어줬다. 그들이 사소한 질문을 할 때, 나는 정성껏 답했다. 그들의 말투, 손끝 습관, 나를 쳐다보는 눈의 각도까지 기억했다. 사람들은 이해받았다고 느껴질 때, 돌아온다. 나는 첫 단골을 얻었다. 단골 +1. 그 다음 주, 단골 +1. 또 그 다음 주, 단골 +1.
그렇게 하나씩, 나는 쌓았다. 어느새 내 아침은 바뀌어 있었다. 눈을 뜨면 단순히 가게를 열지 않았다. 나는 브랜드라는 문제를 매일 풀기 시작했다. 로고가 뭐지, 내 톤이 뭐지, 나와 내 샵의 목소리는 뭐지. 수학에서 공식이 문제를 푸는 도구였다면, 지금은 사람들이 내 브랜드를 믿게 만드는 규칙이 필요했다. 나는 내 실수로 만든 규칙들을, 내 생존으로 만든 도구들을, 내 가슴으로 만든 목소리를 글로 써 내려갔다.
이 도시의 아침이 차갑던 어떤 날, 나는 사진을 찍었다. 내 손, 내 도구, 내 공간. 세 가지의 조합이 나를 설명했다. 계정에 올렸고, DM이 왔다. 교육할 생각 없냐고, 우리 샵 직원 교육 좀 해달라고, 신규 입문자에게 무엇부터 가르쳐야 하는지 알려달라고. 내가 다시 가르치는 사람이 되었다. 칠판 앞에 서서, 나는 가슴이 뛰었다. 이번에는 숫자가 아니라, 내가 견딘 시간을 가르칠 수 있었다. 나는 말했다. 루틴을 만드세요. 오늘 +1을 하세요. 그게 쌓여서 당신을 지켜요.
오늘도 강의실 문이 열린다. 작은 조각들의 얼굴이 들어오고, 나는 손짓으로 자리를 정해 준다. 우리는 동선을 배운다. 한 아이가 질문한다. 대표님은 언제부터 대표였어요? 나는 웃었다. 지금도 때로는 그냥 소녀 같은데? 처음엔 아무것도 없었어. 손님도, 수강생도, 이름도, 시스템도. 있는 건 딱 하나였지. 지금 포기하면 진짜 끝이다라는 마음 하나. 그 마음이 나를 대표로 만들었어. 명함이 아니라.
여기가 내가 가장 잘하는 액션 영화의 장면이다. 나는 화려한 옷을 입지 않았고, 화려한 싸움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매일같이 작은 싸움들을 했다. 글루가 굳기 전에, 습도가 오르기 전에, 고객의 눈물이 떨어지기 전에, 내 두려움이 입을 떼기 전에. 나는 먼저 손을 뻗었다. 펜을 잡았다. 포스트잇을 붙였다. 전화했다. 미안하다고 말했다. 고맙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일 아침 무엇을 더 쌓을지 적었다.
어느 날 나는 아침 회의를 열고, 벽을 두드렸다. 오늘 우리는 시스템에 +1을 할 거예요. 예약 전 고객 설문지를 바꿔요. 그리고 감동에 +1. 고객의 이름을 세 번 불러요. 마지막으로 루틴에 +1. 퇴근 전, 모두가 5분간 자리 정리를 해요. 모든 일이 다 끝난 것처럼. 그러고 집에 가는 거예요. 팀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내 눈앞에 보이는 것들이 매일 달라지는 것이 좋았다. 사소한 변화들이 모여 거대한 흐름을 만드는 게 좋았다.
나는 수학 강사였던 시절 내가 믿던 것과 지금 내가 믿는 것을 서로 바라보게 한다. 공식은 보편성을 준다. 사람은 변수다. 변수와 공식 사이에서 나오는 해를 찾는 건, 결국 매일의 실험과 관찰이다. 나는 내 샵의 하루를 이렇게 정의했다. 작은 실험, 작은 관찰, 작은 기록. 그 기록의 첫 페이지에 적힌 매출 0원은 이제 내 가장 큰 자산이 되었다. 누구나 0에서 시작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나는 0에서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어느 누구보다 작은 시작을 이해한다. 작아서 눈에 띄지 않는 출발선에서, 자신을 당겨서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다.
수업이 끝나면, 나는 다시 매장으로 내려온다. 손님이 들어오고, 팀장이 내게 눈짓을 한다. 대표님, 뒤쪽 원장님이 오셨어요. 콜라보 제안이래요. 예전 같으면 내 손이 떨렸을 것이다. 지금은 웃으며 손을 잡는다. 반가워요. 이런 기회가 있다니. 그는 말했다. 대표님 브랜드, 되게 좋아요. 목소리가 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사람을 만져 온 시간들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점심시간, 나는 혼자 주변을 돌았다. 손님들이 앉아 있는 모습을 멀찍이 보면서, 내 과거의 작은 방이 떠올랐다. 나는 그 방에서, 아무도 모르는 비밀문서를 하나 썼다. 제목은, 나는 브랜드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때는 결심이라는 단어가 뭔가 커 보였다. 지금도 크다. 다만 그 결심을 매일 지켜낸다는 것은, 그 단어를 내가 살로 만들어냈다는 뜻이다. 매일. 하루하루. 밥 먹듯이. 숨 쉬듯이. 내가 열어놓은 문으로 사람들이 들어오고, 그들이 내게서 무언가를 얻고, 웃고, 돌아간다. 나는 이 도시의 한가운데서 드러눕지도 못하고 가만히 서 있는 나무 같다. 뿌리가 깊다. 깊게 파고들었다.
오후의 손님은 나이가 있었다. 안경을 벗으며 말했다. 따님 결혼식이라며, 조금 더 화사하게 하고 싶다며,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빈틈없게 해드릴게요. 그분의 눈꺼풀은 부드럽고 주름이 얇게 겹쳐져 있었다. 나는 시간을 더 들였고, 그는 웃었다. 그러고 보니 선생님, 원래 뭐 하셨어요? 수학 가르쳤어요. 내가 대답하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수학이 엄청 어려웠는데요. 그럼 지금은 뭐가 어려워요? 내가 물었다. 사람. 그는 대답했다. 나는 웃었다. 저도 그랬어요. 지금도요. 그래도 자꾸 만나야 쉬워져요. 오늘 만난 우리, 이제 조금 쉬워졌죠? 우리는 같이 웃었다. 그는 돌아가며 말했다. 선생님, 이 샵은 다르네요. 작은 일이 그냥 작은 일이 아니에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내가 그에게 가르치려는 것이었고, 그도 느낀 것이었다.
해가 기울고, 불빛이 따뜻해지면, 나는 또 오늘의 기록을 적는다. 들어온 금액, 나간 금액, 새로 들어온 문제, 내일의 숙제. 기획 중인 콘텐츠 아이디어를 세 줄 써 놓고, 협업 제안 스케치를 해둔다. 그리고 가장 위에, +1이라고 크게 적는다. 오늘 무엇을 쌓았는지, 내일 무엇을 쌓을지. 회사의 시스템도, 브랜드의 목소리도, 교육 과정도, 다 그렇게 생겼다. 누가 시켜준 건 아니다. 누가 알려준 것도 아니다. 하루하루 그냥 내가 만든 결과다.
나는 가끔, 내가 너무 오래 버틴 게 아닌가 생각한다. 치열함으로 자랑할 게 뭐가 있냐고, 가끔 자조한다. 하지만 오래 살았기 때문에 볼 수 있는 풍경이 있다. 시작점이 초라해 보이는 사람들의 눈에서, 나는 그들이 아직 모르는 빛을 본다. 어제의 나를 닮은 빛. 그 빛을 꺼트리지 않게, 나는 내 이야기를 쓴다. 이 책은 내 생존의 기술들이며, 동시에 누군가에게 건네는 초대장이다. 당신이 지금 얼마나 작게 보이든, 하루에 하나씩 쌓으면 된다. 외로워도 좋다. 느려도 좋다. 다만 조용히, 끈질기게, 오늘도 청소를 하고, 오늘도 한 사람을 더 만나고, 오늘도 시스템을 하나 더 만든다면, 당신은 어느 순간, 자신이 상상하던 것보다 더 멀리 와 있을 것이다.
밤이 깊어갈 때, 나는 매장의 불을 하나씩 끈다. 마지막으로, 벽에 걸린 액자를 본다. 첫날의 0원이 적힌 다이어리 페이지가 액자 속에서 반짝인다. 나는 그 앞에서 다시 한 번 작은 절을 한다. 오늘도 고마워요, 0원. 당신이 있어서 내가 시작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내게 말한다. 이제 당신 차례라고.
문을 닫고, 열쇠를 돌리고, 나는 계단을 내려간다. 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내 팔에는 내일의 수업 자료가 든 가방이 매달렸고, 주머니에는 작은 포스트잇 묶음이 있다. 어디에서 누군가를 만나도, 나는 그에게 같은 말을 전할 준비가 되어 있다. 복잡한 말로 겁주지 않겠다. 멋진 말로 현혹하지 않겠다. 대신 수없이 반복해 온 한 문장. 나는 브랜드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매일 하루씩 그 결심을 지켜냈다. 그러니, 이제 당신 차례다.
버스 정류장에 서서 나는 잠깐 눈을 감는다. 손이 시려울 때마다 생각한다. 약한 건 괜찮다. 다만 그 약함을 이기는 나의 루틴을 가지고 있으면 된다. 스마트폰 화면에 오늘의 할 일이 사라지고, 내일의 할 일이 떠오른다. 나는 실수하고, 배우고, 기록하고, 후회하며, 감사한다. 내일 아침, 다시 처음부터. 바닥부터. 빗자루를 잡을 준비가 되어 있다.
밤이 더 깊어지면 도시는 잠잠해지고, 불빛이 한두 개만 남는다. 그 중 하나가 내 샵의 간판이다. 빛은 크지 않지만 멈추지 않는다. 그 빛 아래를 지나가는 사람 누구라도, 혹시 잠깐 고개를 올려다볼지 모른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묻는다. 나도 될 수 있을까? 나는 대답을 마음속에 걸어 둔다. 네. 하루에 하나씩. +1. 그게 당신을 데려다준다. 그리고 한 사람씩 더, 그 대답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을 때, 우리는 연결된다. 당신의 첫 번째 +1이, 내 첫 번째 0에서 시작한 길 위로 올라선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시작을 완성해 준다.
아침이 오면, 다시 바닥부터. 그리고 천장까지. 목소리와 손끝과 발걸음으로. 어제보다 한 칸 더. 나는 매일 그 장면을 기대하고, 매일 그 장면을 만든다. 그게 내가 싸우는 방식이고, 내가 살아남은 방식이며, 내가 가르치는 방식이다. 그리고 언젠가, 당신이 이 바닥에, 이 천장에, 이 빗자루와 이 글루 냄새에, 이 포스트잇에 위안을 느끼게 될 날이 오면, 나는 마음속으로 박수칠 것이다. 잘 왔다고. 이제, 당신의 +1을 시작하자고.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
다음 에피소드에 반영될 수 있습니다.